채집 :  물을 안 마시는 사람은 없겠지. 물을 마시면서 나는 사람이 되어간다. 내가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길게 자라는 풀숲이 있고

(임승유, 「산소」 부분, 『그 밖의 어떤 것』, 현대문학,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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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의 물에도 감정이 존재한다는 교육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한 실험에서 두 개의 병에 물을 담아놓고 한쪽에는 밝은 음악을, 한쪽에는 어두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또한 물을 담은 병의 표면에 좋은 메시지를 적은 메모와, 나쁜 메시지를 적은 메모를 각각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물의 결정을 확인하였다. 실험 결과 전자의 병에서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같은 결정이 생겼고, 후자의 병에서는 결정의 곳곳이 끊어지거나 깨져 있었으며 결정이 생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실험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여러 언어를 적용해보아도 결과는 같았다고 한다.

위 실험은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은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말이라고 하는 것의 영향이 건강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 말뿐만 아니라 나쁜 마음도 물에 그대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 항상 좋은 생각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함부로 내뱉는 말이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몸속 수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

실험은 '물의 결정'이라는 아름다운 주제이지만, 결국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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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글쓰기'와 다르게 주워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칠 수 있는 퇴고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글쓰기'는 미리 구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존재하지만 '말'은 비교적 그 시간이 짧다. 말은 대부분 생각과 동시에 입술을 통해 생겨난다.

'글쓰기'는 누군가 계속해서 다시 읽을 수 있다는 무게가 있고 '말'은 상대에게 표정이나 억양, 몸짓까지 곧바로 전해진다는 무게가 있다. 그 밖에도 글과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죽음까지도 몰고 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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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기의 방식보다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다.

언어 자체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와 있을 때 오래 생각하여 말을 하거나, 최대한 짧게 말을 하거나, 침묵하는 화법을 취한다. 질의에 대한 응답이 느린 사람이라서 주변에서는 나를 답답해하기도 한다. 오래 생각하여 압축적으로 대답을 하기에 생각에 대한 의도가 상대에게 잘 전달되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지점으로 평가받거나 쉽게 판단 당하는 일을 싫어한다. 그래서 타인과 대화 중 타인과 관계된 말을 할 때 특히 주의한다. 삼자에 대한 이야기도 주의한다. 내가 받는 평가와 판단이 싫은 만큼 사소하게라도 타인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좋은 의미의 조언에도 상대에 대한 판단이 담겨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조언보다는 위로를 택하는 편이다. 또한 섣부른 칭찬이나 부추김조차도 상대가 원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한 사람' '활발한 사람' '즉흥적인 사람' '계획적인 사람' 같이 사소하게 사람을 나누는 지점에도 평가와 판단이 들어가 있다고 여긴다. 특히 상대가 오랫동안 봐온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강박이 되지 않게 주의하려 한다. 그 사람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하려 한다.

나조차도 '나다움'에 대해 평생 알지 못할 수도 있는데, 타인에 의해 평가와 판단을 당하는 것만큼 상처이자 폭력은 없을 것이다.

내가 대답을 압축적으로 하는 습관은 시를 쓰면서부터 생긴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단순 읽기 방식이 아니라 해석과 분석을 필요로 하듯, 나의 말하기 방식은 '쓰기'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말하기'에서는 좋은 버릇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말에 나의 의도가 몇 퍼센트 담기는가' '글에 나의 의도가 몇 퍼센트 담기는가'에 대한 질문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나의 말과 글은 어떤 정보적인 부분에서는 전달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감정의 부분에서는 낮은 전달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훈련하고 있고, 더욱 섬세하고 세밀해지려고 한다. 나는 '섬세'와 '세밀'을 좋아한다. '미세'와 '상세'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의도가 말과 글에 잘 녹아들지 못할 때 어떻게든 생각을 덧붙이고 추가하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의도가 담기지 않을 때 부족함을 느낀다.

언젠가 의도가 온전히 담기는 날을 바라며 글을 쓰는 것 같다.

물론 말로 뱉는 순간, 글로 담는 순간에 이미 의도는 왜곡되고 그것이 상대에게 전해졌을 때는 다시 한번 왜곡되지만 조금이나마 온전히 의도가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왜곡되고 그릇됨을 통해 새로움과 반짝임이 발견되기도 하기에 언어라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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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한 문장처럼 물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 물을 마심으로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사람은 글과 말로 소통하려 한다. 글과 말, 소통을 통해 사람이 되어가고 성장을 하기에 물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말과 글, 언어의 사소한 지점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예민함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과 글 자체에 대한 힘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말과 글의 무게는 믿는다.

소중하고 섬세하게, 좀 더 예민하고 미세하게 매만진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물의 결정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