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몇 번의 허물어진 기억들에게.
봄입니다. 공사 중입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동네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날마다 수 세기가 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from.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서 발신자 표시 불가능.
수원에서 인천을 잇는 전철이 있었다. 한 번도 전철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수원역으로부터 갈라지는 노선이었던 것 같은데 도로가 개발되면서 끊어진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철길을 텃밭으로 가꿨다. 선로 주변을 형형색색의 울타리가 둘러쌌고 은행나무가 가득했다. 나는 노란색을 좋아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노란색을 좋아했다. 노란 나비, 노란 티셔츠, 노란 양말, 병아리, 개나리 등등. 그리고 나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싫어했다.
선로가 있던 자리가 공원이 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흔히 아는 넓은 공원과는 달리 선로가 있던 자리에 맞추어 긴 공원이 만들어졌다. 선로 모양으로 보도블럭이 깔렸다. 공원 끝에는 이곳을 기념하며 선로를 짧게 남겨두었다. 그리고 기념비가 만들어졌다. 나는 거기서 친구들과 중심잡기 놀이를 했다. 매일매일 공원에서 놀았다.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하고 벤치에 앉아 어린아이 같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공원에서 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어린 시절이 끝났던 것 같기도 하다.
작년쯤 분당선과 수인선이 붙어서 수인분당선이 된 소식을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선로 모양 공원으로 남아버린, 길고 긴 시절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지금의 나는 밤산책을 좋아한다. 공원 끝까지 걸어가면 중학교가 있다. 이 노선의 목적지인 것만 같다. 더 걸어가면 수원천이 있었다. 더 걸어가면 전철이 다니는 다리가 있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와 산책을 자주 갔는데 언젠가부터 가지 않았다. 마지막 놀이와 마지막 산책을 떠올려보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집에서 20분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녔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도 있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순전히 엄마의 선택이었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아파트 재개발 공지가 떨어졌다. 나와 친구들은 전보다 멀리 돌아서 학교에 다녔다(졸업할 때까지 그랬다). 우리가 뛰어 내려가던 언덕과, 우산과 양산을 고치고 팔던 가게와, 요셉(가명)이의 집과,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까지 모두 사라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 유리조각을 자주 밟았다. 플라스틱조각도 자주 밟았다. 전쟁의 폐허를 걷는 아이들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높고 얇은 가벽이 세워졌다. 우리는 벽에 붙어 학교에 갔다. 회색빛의 벽이었는데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동네의 흔적과 잔해들이 말끔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재개발은 학교 바로 옆까지 진행되었다. 교회 하나와 성당 하나만 허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공사현장 옆을 걸을 때마다 숨을 참았다. 먼지를 다 마셔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타워크레인을 자주 보았다. 그걸 보면서 컴퍼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즘에 아파트가 다 지어졌다. 그때를 내 어린 시절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남지 않고 모든 게 바뀐 기분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흩어졌던 친구들처럼, 나와 같은 학교에 갔던 친구들처럼, 아주 소수의 것들만 나에게, 나의 동네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앞에서 말했던 언덕은 아직 남아 있다. 분명 어릴 때 다니던 언덕과 같은데 그 언덕을 지날 때마다 낯선 느낌이 든다. 나와 그 언덕을 뛰어 내려오던 친구들은 언덕을 기억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재개발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열아홉 살 때부터 시작되다가 스무 살이 된 올해부터 대대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나의 유년은 개발로 시작해 개발로 끝난 것 같다. 한곳에 머무르고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한 기분이다. 그리고 다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옳다고 생각했던 믿음들을 많이 허물었던 것 같다. 낡은 생각들을 허물고 새로운 생각을 지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선을 구축했던 것 같다. 그러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를 내 어린 시절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작년 가을부터였다. 주일마다 교회를 오고 가면서 엑스 자로 락카가 칠해진 공가를 많이 봤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제법 높이 올라간 아파트를 볼 때면 그만큼 시간이 지나갔음을 느낀다. 엑스 자로 칠해진 건물로 시를 쓴 적이 있었다. 재개발을 주제로 쓴 시였는데 지금 보면 표현이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를 처음 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하얀 나비’라는 제목의 시인데 ‘배추흰나비 훨훨 날아 꽃 위에 앉아~’와 같은 부족한 표현들로 쓴 시였다. 그때의 나는 시화를 그리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손에 파스텔을 잔뜩 묻혀가면서 그림을 그렸다. 학교가 끝나고 시간이 남아돌면 집에 돌아와 시를 썼다. 그림을 그렸다.
내가 시를 처음 읽은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를 했던 엄마의 창작노트를 보다가 처음 시를 만났다. 외갓집에 가면 엄마의 시들이 액자로 되어 있다. 친구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엄마의 시를 보면 어딘가 마음이 울적해진다.
스스로 시다운 시를 썼다고 느낄 때. 그때를 내 어린 시절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시는 건축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견고하게 쌓아 올려도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은 내가 세운 벽에 내가 갇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도 있다. 시를 통째로 날려버린 적이 많았다.
꿈을 꾸었다. 지진이 난 곳에 홀로 있는 꿈이었다. 나는 곧 잠에서 깨어났고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며칠째 집 바로 옆에서 건물을 허무는 공사를 하고 있다. 사층 정도 되는 건물을 허물고 있는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딸기와 소다(반려 물고기들)도 함께 놀라 물속을 빠르게 헤엄치고는 한다. 공사 첫째 날에는 지진이 난 꿈을 꾸다가 깨어났는데 정말로 땅이 쿵쿵거려서 벌떡 일어났다. 공사인 걸 알고 다시 잠들려고 했지만, 주기적으로 쿵쿵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 며칠 동안 이른 아침에 강제 기상을 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때때로 공사현장을 본다. 사흘 동안은 건물이 반도 허물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던 소리를 가늠했을 때 건물은 거의 허물어졌을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웠고 암담했고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건물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가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 어떻게 보면 살아있던 것이 죽어가는 것인데 어떠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회색의 시멘트괴물 같은 그것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했다. 건물은 하얗고 밝은 느낌이 들었는데 무너질 때마다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철거하는 건물이 내 방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창문이 불투명이라서 바깥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굴착기 같은 것이 건물을 조금씩 부수고 잔해를 치워가는 듯했다. 언젠가 무너지는 건물 속에 홀로 있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다행히 시멘트와 철골에 깔리기 전에 깨어났다. 첫 번째 지진 꿈을 꾼 이후로 지진 꿈을 다시 꾸지는 않았다. 다만 흔들림과 쿵쿵거림 속에서 살고 있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 공룡들과 매머드가 쿵쿵거리는 꿈을 꾸고 싶다.
(꿈을 꾸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한 번의 재개발이 또 있었다. 이 이야기는 좀 더 앞으로 들어갔어야 할 이야기이지만 이곳에 적고 싶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학교 증축공사를 했다. 미술과, 문예창작과, 음악과 교실 앞쪽에 있었던 탁구장을 없애고 두 층을 쌓아 올리는 공사였다. 그 때문에 전공실을 교실로 썼다. 책상과 의자, 사물함과 청소도구함을 비롯한 모든 물건들을 옮겨 수업을 들었다. 생활을 했던 전공실은 공사를 하는 바로 아래였다. 그래서 수업을 할 때면 늘 드릴 소리가 났다. 화장실 공사도 함께 했던 탓에 운동장에 마련된 컨테이너 화장실을 쓰기도 했다. 컨테이너 교실을 잠시 썼던 반들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정말 고생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렇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운석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싶다.)
옛것을 허물고 새것을 짓는 일은 언제나 허물어지는 기억도 동반하는 것 같다. ‘수인선’과, ‘재개발된 동네 1’과, ‘재개발된 동네 2’와, ‘흰색 건물’의 기억은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나의 기억 속에는 있는데, 없다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마치 한편의 짧은 ‘꿈 영화’를 관람한 것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곳들이 남아있을 것만 같다. 나의 기억 속 그곳들은 이제 더 이상 돈을 주고도 갈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사를 가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사가 한 번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사는 없다. 한곳에서 스무 살의 시간만큼을 살아서 동네의 떠난 이웃들, 사라진 건물들 같은 흔적을 기억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동네의 과거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동네의 과거를 기억하는 옛사람들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기나긴 여정 같은 이 글이 내가 살아온 그곳들을 기억하는 기념비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길고 긴 글을 내가 살아온 땅에 살아갈 22세기의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부록] 기억 묘목원의 품목
타임캡슐에 글을 묻고 나서 한편의 기록물을 더 썼다. 캡슐 속에는 비록 넣지 못한 글이지만 그곳과 맞닿아 있는 세계의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적이라고 느끼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사라짐’ ‘공허함’ ‘이상함’ 같은 감정에 도달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