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사랑이 언니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이십 년 전에는 비포장도로였던 길을 걸어 언니와 나는 학교에 갔다 장마에는 질퍽거리고 해가 성큼 지는 겨울에는 고라니가 튀어나오는 길이었다 저것 봐 쟤도 불쌍한 눈동자 가졌잖아 겁먹지 않아도 돼 그때 언니는 말했고
그해 겨울은 유독 동짓날 밤만큼 길었다 일등만 하던 언니는 대학에 못 가 펑펑 울었다 몇 해가 지나고 오빠는 삼수해서 대학에 갔다 나도 어느 전문학교에 갔다 언니의 졸업식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가슴에 꽃을 단 언니가 여전히 사진 속을 지키고 있었다
사랑이는 언니를 닮았다 점점 울지 않았다 분유병을 쥐여주면 마시고 구석에서 놀았다 지치면 알아서 낮잠 자는 사랑이었다
사랑이를 데리고 언니와 엄마 산소에 갔다 차를 몰고 포장된 도로를 달렸다 길이 좋아졌네 언니가 말했다 무덤 앞에서 언니가 기도하는 동안 사랑이는 나의 품에 안겨 곤한 잠을 잤다
고라니가 눈을 부릅뜨고 길가에 서 있다 놀란 내가 가슴을 움켜쥐고 봤어? 하고 언니에게 묻는다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이는 여전히 자고 있고 고라니는 또로록 또로록 하고 운다
(2023 계간 문예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