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혜석, 자화상(캔버스에 유채)
어릴 적에는 해마다 자화상을 그렸던 것 같다. 나의 사진을 놓고 그리기도 했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여러 자화상을 그렸던 것 같지만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두세 개 정도이다. 만화 캐릭터처럼 눈을 커다랗게, 그리고 얼굴은 크고 몸은 작게 그렸던 자화상도 있었고
미래의 꿈을 이룬 나의 모습을 그린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때의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그림 실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다른 그림보다도 나의 얼굴을 그리는 일에는 더욱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사진 위에 필름을 덧대고 그린 자화상도 있었고, 나중에 책이 나오면 프로필에 넣자고 친구와 그린 자화상도 있었다.
나는 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내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자화상을 그릴 때마다 화가들의 자화상을 떠올리고는 한다.
자화상에는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반영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지점에서 나혜석의 자화상을 보면 매우 어두운 배경과 우울에 잠긴 듯한 쓸쓸한 표정을 띠고 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당시에 서양화는 다수가 전공하지 않는 분야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많은 사람이 나혜석에게 주목했다고 한다. 나혜석의 그림이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의 풍경을 서양화의 화풍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지금은 서양의 기법들이 익숙하고 이질감이 없지만, 당시에 한국 여성이 서양기법으로 담은 유화는 낯설고 독특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자화상’에서도 알 수 있듯 큰 눈과 높은 코의 이목구비, 강하고 과장된 윤곽선의 서구적인 외모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작품인 것처럼 보인다. 근심하는 듯한 표정과, 화장을 한 것 같기도 한 얼굴을 통해 시대와 사회가 바랐던 여성상의 겉모습이 담겼다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나혜석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나혜석은 시와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나혜석의 소설을 보면, 어머니의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여성은 시집 잘 가서 남편을 모시며 잘 먹고 자는’ 것이 제일이라고 여겼던 것을 비판하며 과감하게 잡지에 넣기도 했다.
다시 자화상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나혜석이 여러 의도를 담아서 그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화상을 통해 뻗어나가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자화상을 슬픈 얼굴로 그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또한 최대한 나의 얼굴을 똑같이 묘사한다는 생각을 그릴 것 같다.
자화상은 ‘나’의 얼굴을 그린다는 지점에서 다른 종류의 그림보다도 정성을 쏟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독립적인 그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나의 자화상을 그린 이유를 생각해보면 커다란 이유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그린 것도, 그렇다고 내가 보려고 그린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알고 싶은 마음,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다음 자화상을 그릴 준비를 한다.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가물가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