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조각은 모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다. 흩날리는 눈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모빌은 섬세한 빛이나 미묘한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다른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가 생기는 것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을 보게 되는 셈인 것이다.
모빌은 공중을 떠돌고 있는 예술작품이다.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떠돌고 있다는 것,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된 작품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품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런 모빌을 탐냈던 기억이 난다. 주렁주렁 줄에 매달린 것이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에서 오는 신기함이 컸다. 그리고 매달려 있는 것들이 하나로 묶인 것을 보면서 모빌도 하나의 세계라고 느끼고는 했다.
모빌을 하나 만든다면 무엇을 매달 건가요?
누가 물으면 동물들과 숲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풀과 나무를 매달고 동물 인형을 매달 것이다. 숲에 숨은 동물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어쩌면 위의 사진처럼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매달지도 모르겠다. 가능하다면 아마도 구슬을 매달 것이다.
날아다니는 것들에 대한 상상을 자주 한다. 새, 나비, 나뭇잎, 씨앗, 먼지. 공중에 떠도는 것들의 사방에 대해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것들은 어딘가에 내려앉는 것을 제외하면 어느 곳에도 닿지 않고 떠돈다. 그것이 때때로 불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에 비해 모빌은 고정되어 있다.
고정된 비행 상태인 것이다. 고정된 비행이라는 말을 곱씹으면 무척이나 이상한 말처럼 느껴진다. 마치 모빌의 세계는 어떤 진공 상태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빌을 생각하다 보면 매달린 장식품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썬캐처, 마크라메 등등 벽이나 어딘가에 매달린 장식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왜 무언가를 계속해서 매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상상이 더 넓게 흐른다. 커튼이 매달려 있고, 조명이 매달려 있고, 신호등이 매달려 있고, 간판이 매달려 있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본다.
작은 가지에 달라붙은 잎사귀들을 보면서 모빌 같다고 느낀다. 나무라는 거대한 모빌이 잎사귀들을 매단 채로 흔들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한다.
모빌이 끊어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툭, 하고 끊어질 때를 떠올리면 모빌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멸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한곳에 묶인 채로 공중에서 떠돈다는 말은 감정의 영역과도 연결 지어 생각되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 안에 묶여 있는 감정이지만 붕 떠 있는 채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쩌면 태양도 모빌이고, 달도 모빌이고, 지구도 모빌이어서 우리는 고정된 허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 불완전한 세계 위에 놓여있다는 생각에까지 가닿으면 어딘가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