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떡볶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의 승섭이에 대해서는 기억이 거의 없다 9살의 승섭이는 늘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하교를 하고는 했다

학교 정문 앞에는 문구점이 두 개 있었다 후문에도 문구점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승섭이는 친구들과 컵떡볶이를 사 먹었다

용돈을 받지 않던 9살의 승섭이는 떡볶이를 자주 사 먹지 못했다

열한 살의 떡볶이

11살의 승섭이는 요리를 좋아했다 그전까지는 불을 쓰지 않는 요리만을 하다가 불을 쓸 수 있도록 엄마에게 허락을 받은 나이였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온 승섭이는 자주 간식을 찾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주방에서 떡과 고추장과 물엿과 설탕을 뒤적였다

엄마가 떡볶이를 만드는 보기는 했지만, 불 조절과 요령이 없었던 승섭이는 프라이팬에 떡을 넣고 고추장을 넣고 물엿을 넣고 볶았다

아주 맵고 아주 짜고 아주 달콤한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물을 넣는 것을 몰랐기에 떡은 딱딱했고 온갖 양념들이 팬에 굳어 있었다

그때의 승섭이는 맵고 짜고 달던 그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떡볶이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도 있었던 것 같다

열다섯 살의 떡볶이

15살의 승섭이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요했던 것만 같다 자꾸만 어떤 시기들의 기억들이 잊혀진다

승섭이는 급식으로 나오는 떡볶이를 무척 좋아했다 어쩌면 급식에 떡볶이가 나왔다는 것, 그냥 그것 자체로, 혹은 떡볶이이기에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매운 떡볶이를 좋아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열여덟 살의 떡볶이

18살의 승섭이는 늦게 학교를 마쳤다 친구들과 전시회나 연극을 보러 가는 날, 야간실기를 하는 날, 학교 행사가 있는 날

그런 날이면 꼭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꼭 떡볶이를 먹는다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떡볶이는 나의 중요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중요한 음식이다 주기적으로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우리는 말한다

떡볶이를 먹은지 오래 되지 않았느냐고, 그러면서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우리는 흡족한 표정으로 안양에서 수원으로 향한다

스무 살의 떡볶이

20살의 승섭이는 집에서 대학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은 떡볶이를 만들고는 했다 승섭이의 방식대로 만들었다

승섭이는 보통 정석 같은 떡볶이를 만든다 승섭이는 채소를 많이 넣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후추를 많이 넣는 것을 좋아한다

때때로 떡을 따로 굽고 양념을 얹기도 한다 승섭이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승섭이는 떡볶이가 익숙하며, 승섭이가 떡볶이를 먹는다

(…) 살의 떡볶이

계속,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것.

승섭이는 분식집 떡볶이를 좋아한다 초록색과 흰색이 뒤섞인 무늬의 그릇에 담아주는 떡볶이, 아마 그것을 가장 좋아한다

재료를 이것저것 추가한 떡볶이도 좋아하고, 기본 상태의 떡볶이도 좋아하며, 국물 떡볶이도 좋아하고, 이것저것 선호한다

떡볶이는 맛있고, 떡볶이는 빨갛고, 떡볶이는 맵고 달고, 떡볶이는 쫄깃하고, 떡볶이는 (…), 승섭이가 떡볶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