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를 안내해주는데 입구인 것 같은 전시회장이었다 빛이 있으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만 그런가요?)
오싹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집이 하나 있다 대문은 없고 집의 현관문은 열려 있다 당신은 들어가겠는가? 이것은 한 심리테스트의 문항이다
문항을 문학이라 써서
프린트 했다
테스트는 널리 널리 퍼졌고
연구진들은 사람들의 심리에 몰두했다
폐가를 미술관으로 꾸민 집은 새롭다 사람들은 새로움에 이끌리고
죽은 물건이 되살아나는 일
전시되는 일
어릴 때 동네에 아저씨 하나가 있었는데 말이야 장난감 자동차나 로봇을 고쳐주는 일을 하셨어 그분의 아내는 터진 인형을 꿰매 주셨지 모든 아이가 좋아했어 부부가 죽고는 동네에 아이들이 없었어
사람이 없어
문을 뜯어내고 커튼을 매달면
창문처럼 보일 것 같았는데
문은 문이고
없는데 있는 것 같다 영상실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의 흔적들이 차례로 상영되고 보여진다 살아온 삶의 굴곡을 따라 되감기고 재생되고
빔프로젝터가 쏟아지는 곳에 폭포가 모이는 곳에
내가 서 있었다
죽은 방에는 빛을 삼키고 꽃을 두른 동물이 걸어 다녔다
어떤 것이 소실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늪에 빠진다
다시 돌아와서
미술관은 방이 많은 곳이었다 안내사는 내게 어디와 어디를 둘러보고 나오라 했는데 아마 한 곳은 빼놓고 나온 것 같다
커튼에 조명이 닿을수록 물이 쏟아지는 것 같고
커튼을 들추면
어떤 만화영화에서는 폭포 뒤에 훈련장이 있었다
사실 이 집은
총 다섯 개의 전시장으로 이루어졌다
마구간과 장작 창고와 곡식 창고와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다
뒤뜰엔 가지 마
귀신들이 벌들처럼 웅웅거려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소중한 걸 뒤뜰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이곳은
전시작품을 다 볼 수 없는 곳이고
그러니
모두 그만 나가 줬으면 좋겠고
폐관시간은 없다
폐가이므로 이제는
내가 살아온 적 없는 집이므로
오래 살아온 노부부의 집은 박물관이 될 수도 있겠고
이렇게 방대한 기록으로 남기는 글은
후에 이곳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 현대문학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