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아마 많은 이름들이 있을 것인데요. 저에게도 본명과 쇼쇼와,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태양이와 사랑이가 있습니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별명들도 있고요. 나이에 맞게 아이와 학생과 청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다정하게 들리던 호칭들이 분명하게 남아 있고요.
저에게는 많은 정체성이 있는데요. 아들이자 친구이자 선배이자 동생이자 제자입니다.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는 친절한 친구, 또 누구에게는 조용한 친구일 것이니까요.
다양한 자아도 있습니다. 시를 쓸 때면 자주 요정이 되는 상상을 하는데요. 노인이나 여성, 새, 강아지, 상자, 얼음 등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자아를 가지는 일은 즐겁고요.
그리는 일을 좋아하는데요. 선배는 저를 페인터라 부릅니다. 그림을 그릴 때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요.
기린 그림을 그리면 기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요. 구름을 그리면 구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됩니다.
식물에 관한 책을 읽고 있고요. 식물에 관한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내일은요. 식물 중에서도 뿌리에 대한 부분을 읽고 있는 사람이 되겠고요.
지금은 사람에 대한 글을 짓고 있네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에는 다들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는 상상들을 하지 않나요. 어쩌면 어릴 때에만 꿈꿀 수 있는 욕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가 무척 특별하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고, 특별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고는 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비밀이 많은 사람인데요. 저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사람에 가까운 듯합니다. 신비로운 존재로 남고 싶은 생각도 조금 들고요.
항상 무엇이 되고 싶냐고 누가 묻거나, 다음 생에 무엇이 되고 싶냐고 누가 물으면 돌이 되고 싶다고 답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무용이 될 수도 있겠고요. 운동성을 지닌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존재에 대해 마구 상상하는 일도 즐겁고요. 어쩌면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변의 소라를 바다의 귀로 만들기도 하고요. 수화기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다른 것이 되고요.
어쩌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변해가고 있고요. 나무에 대해 상상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공원의 나무들을 겨울나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새잎이 돋고 있고요.
무지개는 무슨 색이야? 누가 물으면 무지개는 무지개색이야, 하고 말하지 않고 검정이라 말하고 싶네요.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