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1] 밤. 빛.

어둠 중에 가장 덜 어두움이다. 생각보다 밝아 걷기 좋은 날씨다. 파랑은 걷기 나쁘다.

[뜻2] 검정. 흐린 빛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진. 내부구조가 어떻게 생겼을지 호기심이 생기는 비디오 플레이어의 안쪽. 나에게 맞지 않는 안경. 여름의 절정일 때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매미의 내장. 본적 없는 것. 채도가 낮은 골목. 지면서 바스러지는 꽃. 겨울 아침의 하늘빛. 빛에 노출된 카메라 필름. 온갖 붓을 다 풀어버린 물통 속. 번진 연필자국. 전생체험에서 봤던 장면들.

[뜻5] 시각장애인의 세상

사년 전 여름 시각장애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검은 방에 입장해 다 같이 걸어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어둠밖에 볼 수 없어서 주변을 더듬으면서 걸었다. 우리는 대나무 숲에 갔고, 배에 올라 파도가 튀는 것을 느꼈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너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너를 부르면 어디선가 대답하고, 너 아닌 사람의 손목을 잡게 되는 곳.

우리는 안내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앞을 보고 안내하는지. 투시경 같은 것을 쓰고 있는 건지. 묻지만 안내사는 대답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그런 곳. 도움 받거나 홀로 믿고 나아가는 곳. “어둠에서 빛으로 갈 때는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안내사가 말하고, 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의 지점에서 대기했다.

[뜻3] 너의 분위기.

너의 슬픔. 혹은 우울이나 근심 같은. 낮은 온도의 기분으로 묶을 수 있는 것.

나도 어두워지니까. 어찌할 수 없으니까. 내가 온전히.

나는 지금 오리야. 다른 오리와 함께 핑크색 호수를 헤엄치고 있어.

“이 편지로 나의 기분을 잘 읽어줘.” 너는 말하지만 나는 모르지. 그래서 슬픈 일이지.

[뜻4] 나의 분위기.

나의 슬픔. 혹은 우울이나 근심 같은.

나는 어둠 속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향했지. 돌이킬 수 없게 깊이, 깊이.

비밀의 문을 열면.

호수와 종이배가 있었지. 물의 방향을 거스를 힘이 없어 깊이, 깊이.

들어온 문을 완전히 잃고 깊이.

[뜻6] 밝음.

○ 놀이공원의 밤은 더 가라앉아 있다. 소란스러움이 떠난 자리는 더욱 고요해서 어지럽다. 회전목마 불빛이 깜빡거리고. 모든 전력들이 내려갔을 때. 꽃잎은 밤에도 밝다. 피에로. 하루는 모든 분장을 지운다. 하루는 모든 탈을 벗는다.

○ 어릴 때 친척들과 다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사촌들과 함께 폭죽을 쏘아 올렸다. 터진 자리는 다시 어두워지고 순간 멍해졌다. 불꽃이 다녀간 자리는. 밝음 뒤에 찾아오는 어둠은 아득하다. 기쁨 뒤에 찾아오는 불행은 더 무섭다.

[뜻7] 웃는 것.

○ 그래 웃자. 웃어야지. 어두울수록 달은 더 밝게 웃지. 나처럼. 너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나는 미소 지었지. 나는 속아주었지. 말을 안했지. 너의 복수심은 무섭지. 악해지는 것보다.

○ 긍정적인 아이라는 것. 참 슬픈 말이야. 어두운 낯빛이야. 울어야 할 때를 모르고 아이는. 웃지 않는 얼굴이 되어갔지. 책장 뒤를 좋아했지. 이불 속을 좋아했지.

○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잖아. 언제 울어야 하냐고 아이는 묻지. 터져버리지. 웃지. 입꼬리를 더 높이 올리고.

[뜻9] 죽음.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타인의 죽음. 그곳으로부터 오는.

수명을 다한 형광등을 갈아 끼운다. 따뜻하다. 살아있는 것의 온기가 느껴진다. 분명 죽었는데 살아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나올 것 같다고.

[뜻10] 죽음.

간접적으로도 느껴보지 못한 나의 죽음.

스위치 꺼지듯.

[뜻8] 미지.

어두침침과 어둑어둑 중에 뭐가 더 어두운 것 같은지 우리는 이야기했지.

기억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자꾸 도망만 치지.

아팠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어서 더 아픈 기억이 되어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