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물일지를 썼습니다. 일기에 가까운 글이었습니다.

십 년을 넘게 키우던 오렌지나무가 죽었습니다. 토마토와 고추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커졌습니다. 인삼은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것이 맞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마가렛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고무나무는 점점 자라서 손질을 해줄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치자도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치자는 글에서 자주 등장시키는 꽃입니다. 흔히 아는 치자와 다르게 하얗고 커다란 꽃이 피는 것입니다. 어릴 적 팔 년 정도 키운 치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겨우내 얼었던 것인지, 병에 든 것인지 손쓸 수도 없이 죽었습니다. 병든 가지를 잘라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식물을 키울 때면 여전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을 좋아합니다.

잘하지 못하지만 좋아합니다.

Y의 손에서는 죽어가던 식물도 살아납니다. 얼마 전 그가 키우는 선인장에서 커다란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꽃이 필 거라고 상상도 못한 곳에 거대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마 수십 개의 다육이 화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용설란과 산세베리아와 고무나무와 선인장과 관음죽과 (...)

대부분 실내식물입니다.

수국과 장미를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뿌리가 없었는지 금방 죽었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릴 때는 산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수목원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식물원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초록색을 싫어했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모두 좋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고요함을 느끼고는 합니다. 때때로 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보며 섬뜩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좀 더 초록에 가까운 초록색을 찾아다닌 여름이 있었습니다.

산책을 좋아합니다.

거대하고 거대한 백합이 핀 집을 발견한 적 있었습니다.

신기하여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포도가 열린 집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의 그 집에 올해도 포도가 열렸습니다. 포도를 키우는 집에 동네에 두 곳이나 됩니다. 한 곳은 포장봉투를 씌웠고, 한 곳은 새가 먹을까 봐 그런지 그물망으로 덮어두었습니다.

과일을 키우는 일에 꿈을 꾸고는 했습니다.

정확히는 열매가 열리는 식물을 오래도록 가꾸고 싶어 했습니다.

몇몇 시도가 있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낑깡나무를 키운 적 있었습니다.

주홍빛 열매가 열리는데 먹을 수는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열매가 하나씩 사라지는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새가 훔쳐 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 집의 대문 위에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뿌리가 벽돌을 깨고 자라는 것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훌쩍 자라 있습니다.

이것은 성장일지 같은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글을 쓰는지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집니다.

식물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식물을 잘 가꾸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식물을 좋아합니다. 초록빛 여름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