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과 다르게 일기를 쓰고 있으면 괜히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생각으로 자꾸만 움직이게 되는 듯하다.

다른 행동과 다르게 사진을 찍고 있으면 괜히 고요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온전히 그곳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일기와 함께 남길 사진을 찍는다. 찍으려 하기도 하지만 사진이 내게 온다.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처럼, 그것을 찍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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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면 카메라 들이밀기

매일 비슷한 시간에 마을버스에서 내릴 때면 횡단보도에서 달을 올려다보고는 해요.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또 조금씩 늘어나는 달모양을 관찰합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달이 뜨는 날이면 한참을 올려보고 신기해하고요. 신호등이 바뀐 줄도 모르고 바라볼 때도 많고요.

달은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 것 중 하나인 듯해요. 낮달은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담기지만, 밤의 달은 어딘가 뭉그러지듯 담깁니다. 달의 형태가 특히 더 반듯하고 예쁜 날이 있는 듯한데, 온전히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온전히 담기지 않기에 더 신비하기도 했네요.

아주 조금씩 바뀌는 달을 날마다 볼 때면 어떤 기록에 대해 생각하고는 해요. 날이 줄어들고, 또 늘어나는 것이 마치 책을 넘기는 행위와 비슷하게 다가오고는 합니다. 하루 동안의 시간, 아직 기록되지 않은 기록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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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카메라 들이밀기

산책을 하다 보면 그 계절의 꽃을 마주하는데, 카메라를 먼저 가져다 댑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한참 꽃을 관찰하고요. 새잎이 돋고 있는지, 봉오리가 돋고 있는 시기인지, 꽃잎이 슬슬 우글우글해지는 시기인지, 혹은 곧 밤이 찾아올 것인지와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물가에서는 아주 자잘하고 희미한 꽃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런 꽃들은 사진으로 잘 담기지 않습니다. 평소에 여러 꽃이 한곳에 모인 풍경 찍기를 좋아하는데, 엄마는 꽃을 한 송이씩 찍는 것을 좋아하고요. 꽃술까지 세밀하고 선명하게 보이도록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정한 꽃이 피는 시기에는 똑같은 꽃들을 매일 찍게 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고요. 어떨 때는 사진첩에 꽃이 필 때부터 꽃이 질 때까지의 과정이 모두 담겨 있기도 합니다. 다 져버린 꽃을 왜 찍냐고 누군가 묻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시든 꽃을 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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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보면 카메라 들이밀기

흰색의 테두리가 또렷한 구름. 형태가 희미한 구름. 넓은 구름. 먹구름. 적란운. 노을이 질 때의 구름. 새벽 구름. 밤의 구름. 하늘을 자주 올려보며 걷기에 마음에 드는 구름을 만나면 카메라를 꺼냅니다. 마음에 드는 구름이란 참으로 애매한데요. 보기에 예쁘면 찍고는 합니다.

그런데 몽글몽글하고 희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고도 지나치는 날이 있고요. 또렷한 윤곽 없이 먼지처럼 희끗희끗한 구름을 여러 장 찍는 날도 있습니다. 다른 대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날의 구름은 왠지 다시 못할 것처럼 느껴지고요. 그래서 찍게 되고요.

구름을 보면서는 밀려오고 밀려가는 어떤 힘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구름이 밀려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구름 사진은 구름만을 온전히 담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한낮과 한밤의 구름 모두 좋아합니다. 목을 꺾어 늘 위쪽 바라보고 걷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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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보면 카메라 들이밀기

요즘 부쩍 많이 찍고 있는 듯합니다. 시커먼 그늘을 왜 찍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뱅글뱅글 물음표가 돌고요. 빛을 좋아하는 것과 연결되기도 하는 듯하고요. 어떤 형태에 대한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고요.

특히 나무 그늘은 마치 그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좋아서 자주 찍습니다. 때때로 그늘의 주인과 그늘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때가 있고요. (그러한 모습이 신기하지 않은가요?) 다른 모양과 다른 테두리의 그늘들이 곳곳에 생깁니다.

어떤 것을 그것으로 보는 것보다, 다르게 보게 되고요. 그늘 속에 쉬어가면서 사진을 찍는 여름입니다. 알 수 없는 모양들이 사진첩 속에 가득하고요. 그늘의 세계는 그물처럼 보이다가도, 모래성처럼 보이다가도, 반복적인 어떤 무늬로 보이기도, 괴생명체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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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보면 카메라 들이밀기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루는 태양이 쏟아지는 빛의 줄기가 예뻐서 볕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었네요. 대게는 빛이 완전히 흩어져 찍혀 있고, 그러한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곡되는 빛을 찍습니다.

밤에는 가로등 사진도 자주 찍고는 합니다. 가끔 멍울처럼 빛이 만든 또 다른 빛이 찍혀 있기도 한데,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고는 했네요. 빛나는 것들을 찍습니다. 조명을 찍고, 전광판을 찍고, 정류장의 정보시스템을 찍고, 광장을 찍고 (......)

색깔이 있는 유리나 투명한 것들이 만드는 빛도 좋아합니다. 썬캐쳐가 만드는 프리즘을 찍는 일도 좋아하고요. 빛이 있으면 사진을 찍게 되고는 합니다. 보는 것과 무척 다르게 찍히지만 찍습니다. 빛이 유난히 진하고 선명해지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한낮을 좋아하는 아이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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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고 나서부터는 유난히 사진을 많이 찍는다. 달, 구름, 꽃, 그늘, 빛 같은 건 그날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님에도 습관적으로 사진을 남기는 것들이다. 어쩌면 매일, 혹은 매년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의 사진을 찍는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켠다. 여러 번 찍는다. 찍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또 찍는다. 한 번만 찍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날도 있다. 저녁에 사진첩을 열었다가 놀라운 사진을 발견하는 날도 많다.

이것들을 버릇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는 행동 자체를 버릇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 대상들에게서 반응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또 다른 버릇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버릇이 될 만한 거리가 생길지도 모른다. 봄에는 돋아나는 새잎을 찍고, 여름에는 능소화랑 배롱나무를 마구마구 찍고, 가을에는 단풍을 찍고, 겨울에는 눈이 펑펑 오는 것을 찍고. 찍어야만 하는 것들이 오게 되면 습관적으로 사진으로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