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삼각형의 돌

팔각형의 뿔

구백일각형의 산

천이백오십각의 책

사만삼천사각의 바다

오각형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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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이었을 때 만든 세계의 모습이다 뷔페에서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을 접시에 하나씩 담았다 공룡도 몇 마리 뿌렸는데 제법 많아졌다 교배되고 교배되고

나를 낳은 사람이 있으면

있는 거지

나를 닮은

친구를 만들었더니 악동이 되어버리고 산과 들을 불태우고 재를 바다에 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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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걷는다

또 다른 신이 있을까 싶어

모래산 꼭대기에

내 아버지가 있을까 싶어

걷지만

돌고 도는

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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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단장한 테마파크, 유니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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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공룡이 뛰어다니고

친구의 친구가 잡아먹히고

키우던 새끼공룡은 커져 버리고

나를 먹으려 들지

물가를 찾고

나무 위에 집을 지었다가 목이 긴 동물에게 당하고 너는 화석이 되고

화석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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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기가 싫었던 신이

산꼭대기에 불을 붙인다

부글부글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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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처음 본 이삭이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강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시각 화석이는 불타는 산꼭대기에 갇혀 있었다

불길이 꼭대기를 향해 몰려갔다

“뭐 하는 짓이야 불이 더 세졌잖아”

어둠을 만들자 불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을 만들자 불이 더 활활 타올랐다

모래더미에 쓰러진 풍경으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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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들고 나비를 만들고

보기에 좋았다

비눗방울은 삼 초만 살다 죽었다 하늘빛이기도 분홍빛이기도 했다 모두의 대답이 달랐다

아버지는 우리를 흙으로 빚었고 숨을 불어넣었고

아이들은 아버지만큼의 힘이 없어서

아이들의 입술에서 나온 비눗방울은

일찍 죽는다

삼 초 동안

세상이 망하면 좋겠다고

너는 기도했고

세상이 망해버렸다

그때까지 기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