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기후비상사태―리허설>

* 문, 안쪽 깊숙한 곳에는 검정과 목소리

연극을 보기 전에는 기대감 반과 작은 걱정 반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환경'과 '기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이라는 연극을 선택하게 되었고, 초록색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그려지는 기대감이 연극을 보기 전까지 있었다. 그리고 작은 걱정은 '기후'와 '환경' 그리고 '지구'라는 거대한 키워드들을 너무나 주제적으로 풀어나가지는 않을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극이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걱정을 완전히 지워주는 듯했다.

극의 문은 '나'를 통해서 열린다.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한 사람이며, 연극을 꾸린 작가이기도 하다. 연극의 대본집을 손에 들고 입장하는 장면부터 독특함을 느끼게 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나 '나'는 등장과 동시에 연극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장면이라는 점도 신선함을 남겼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연극 소개인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장면임을 알고 나서야 심상치 않은 연극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자 '작가'는 연극 안에서 큰 작용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극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독특했던 점이 연극에서 꽤 많은 숫자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모두 '나'이자 '작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실명을 쓰기도 하며 마치 현실과 극 속을 오가는 듯한 대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리허설'이라는 연극의 부제목을 강조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인물 한 명 한 명의 독백과 목소리가 주는 울림도 컸다. 단순히 한 편의 연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고 느꼈다.

* 문 안쪽 깊숙한 곳에는 검정과 적요와 잠잠히,

'나'라는 인물의 등장에 이어서 극장은 암전이 된다. 연극 안에서 암전이 여러 번 되는데, 그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전은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이라는 연극 안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모든 것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그 상태에서 아늑함을 느끼기도 하고,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여러 사람이 암전의 상태에 함께 놓일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암전의 순간에 관객들은 옆 사람의 기운과 기계의 숨소리를 느낀다. 그것들을 느끼는 동안 극장은 숨 쉰다. 암전은 연극에서 지구의 멸망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암흑 속의 숨은 또 살아있다는 증거이기에 한편으로는 대비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마치 지구가 생겨난, 혹은 세계가 생겨난 최초의 순간을 느끼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연극은 기후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로 보여준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광주 아파트 붕괴, 노동자의 과로사 등 여러 사건을 보여준다. 연극의 초반에는 그것들이 기후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떤 '재난'과 '비극'이라는 점에서 연결되는 듯했다. 그러한 재난들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생명의 희생으로 아픈 경험을 했다고 말하지만 나아지지 않은 채로 또다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문제들은 쉽게 이슈화되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한 사건들이라는 것. 그러니 '기후'의 위기 또한 수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외면했기에 이제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설마 지구가 멸망하겠어?' 와 같은 마음이 안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러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여러 사건이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벌어진 것처럼, 기후 문제 또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축적되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해 배운다.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있었음에도 변한 것은 없다. 산업혁명부터 백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지구의 온도를 급상승시킨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임을 연극은 보여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출은 인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무대의 가구들을 옮기고 소품들을 마구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마치 점점 빨라지는 온난화의 속도, 기후의 변화를 인물들의 행동과 목소리의 고조하듯 표현한 방식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다른 연출 방식들도 독특하게 다가왔다. 공간이 고정되어있는 듯하면서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지구의 변화를 작게 대변하는 듯했다. 연극에서 인물들은 의자, 실내 자전거, 침대, 책상, 테이블, 바닥 등 여러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간다. 마치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또한 배우의 대사를 통해 여러 사례를 보여주면서 여전히 인간은 생태계를 파괴할 궁리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극을 통해 주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전달받을 수 있었지만, 주제를 전면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연극의 역할일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 나무가 보이는 집, 유리창

연극을 다 보고 남은 단어는 '반복'이었다. 행동과 대사들이 여러 인물의 목소리와 상황을 통해 불규칙적으로 반복된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입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것은 연극의 중심 키워드인 리허설과도 연결되는 듯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110분 동안 마치 끝이 없는 리허설을 본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반복'적인 실수와 과오를 저지르는 인간의 모습들, '반복'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강조하던 사람들과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지구의 상태는 유지되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는 것. 그러한 지점들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듯했다.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표현들로 이루어진 지점도 기억에 남았다. 노래와 랩을 하는 장면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전문가의 말이나 연설의 내용이 '나'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작가가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 작가로서 주제를 고민하는 장면을 전달받은 기분도 들어서 '연극에 대한 연극'을 본 기분도 들었다. 전체적인 연극의 감상은 무수한 '나'들의 단순한 일상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연극 안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지만, 멸망 직전의 우리들은 어쩐지 평온한 일상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멸망 직전까지 안일한 마음을 보이는 우리의 모습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그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씁쓸해진다. 연극이 던지는 어떤 마음이자 덫에 걸린 기분이다.

* 조금 긴 산책, 걸을 수 있는 만큼보다 조금 더 가자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은 지구가 직면해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실천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주기보다, 지구가 어떻게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이었다. 평소에도 ‘지구’ ‘환경’ ‘연극’ ‘희곡’에 모두 큰 관심이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잊지 못할 연극이 될 것 같다. 특히나 연극에서는 기후위기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도, 극의 뒤편에서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던 지점이 무척 새롭고 의미 있는 도전으로 다가왔다. 국립국단에서 올린 글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는 연극을 꾸릴 사람들이 처음 만나고, 준비하게 되는 과정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연극의 준비 과정에서는 개인 컵과 텀블러를 쓰거나 대본의 인쇄도 최소한으로 하는 등의 실천을 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무대의 소품은 가구를 재사용하고, 의상은 의상실에서 대여하여 식물성 세제로 세탁했으며, 음향·영상·분장 등 전 과정에서 무엇 하나 환경을 염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지점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또 한 가지 독특했던 것이 연극 시작 두 시간 전쯤 설문조사 하나를 문자로 받았다. 그곳에는 도보, 버스, 지하철, 자가 등 연극을 보러올 때의 경로에 대해 각각의 이동시간을 체크 하는 문항들이 있었다. 설문조사를 하면서는 조사의 이유를 짐작만 하였는데 탄소발자국 계산하고, 탄소배출량을 절감하는 취지였다는 지점도 기억에 남았다.

무대의 제작부터 관객에게 보여지기까지, 전 과정이 여러모로 새롭고 선명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연극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것들이 커다란 울림을 주는 듯했다. 커다랗고 특정한 주제를 전면으로 표현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연극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이라는 연극이 처음에는 ‘지구’의 ‘위기’로부터 출발했을지 모르겠지만, 무대 안에서는 마치 코로나19의 시대 속 ‘연극’이라는 세계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풀어놓은 연극이고, 또 배우들의 목소리가 진솔하게 다가오던 지점까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