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그 집은 가장 단단하고도 허술한 문을 가졌다 선뜻 들어설 수 없었으나 또 쉽게 뚫을 수 있었다 문을 두드리면 들려오는 목소리는 밀려나는 파동이었다 창유리 너머로 그 집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으나 그들의 언어를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다 떠오르는 물거품이었다 말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그들의 세계에도 밀려나는 힘이 있어서 빛의 틈마다 위험한 가계*)들이 모여 살았다 네 개의 바위 두 개의 풀 수천 개의 자갈이 있었다 흔들리는 방에 살고 싶었다 흔들리는 꿈을 꾸고 싶었다 이 세계와 다른 중력을 가져서 몸을 흔들지 않으면 천장으로 떠오르는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많이 움직여서 건강해지기 위해, 날씨가 하나밖에 없는 그곳에 세들고 싶었다 입술로만 서로를 공격하는 그들 틈에서 침착해지고 싶었다 건조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 집은 개방적인 화장실을 가졌다 똥을 싸는 모습까지 함부로 보여주는 그들의 세계에 살고 싶었다 하늘빛 커튼을 감아올리는 동안에도 기억을 잃어버리는 뇌를 가지고 싶었다 삼 초마다 새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언젠가 전생체험에서 희미한 운명을 확인했다 흔들려서 흐릿한 인화사진을 바라보듯, 하얀 막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흔들리는 언어를 읽어내릴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때때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쉽게 포착하지만 침묵하는 입술을 가졌다 어쩌면 나의 방은 그들에게 쉽게 들키는 곳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바깥을 내다보는 일로 대부분 이루어지므로 그것은 나를 관조하는 일이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입술로 그들이 내게 뭐라 말한다 그들과 나는 철저하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웃이었다 맑은 소리의 초인종이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미끄러져도 뇌진탕에 걸리지 않는 그곳을 보며 미끄러지는 상상을 했다 그 세계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 기형도, '위험한 가계'